“초반은 다들 강한 것 같아요. 어수룩하지도 없고 여느 고수들이 판을 짜도 이 정도겠다 싶은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 대회 자료를 다시 훑어 보면 단위가 그리 높지 않은 데에 깜짝 놀라곤 해요” 연구생 출신, 입단 후보 영순위의 강자이자 이번 국무총리배 대표 이상헌 선수가 과장 없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4라운드에서 싱가폴의 탄지아청 선수와 대국했을 땐 중반에 약간은 위험한 형세를 맞이해 깊은 침투 후 타개를 감행해야만 했을 정도다. 접전에서 힘 차이가 드러나 탄지아청 선수의 실수가 여러 차례 나왔고 잘 수습이 되면서 이겼지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선비처럼 점잖기로 소문난 후위칭 중국 대표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1회와 2회 때도 출전했던 후위칭 선수는 “국무총리배가 일본 주최 세계대회인 세계아마바둑선수권 대회보다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5라운드에서는 대만의 97년생 소년기사 예헝위엔에게 시달리다 돌을 거뒀다.
중국의 영향이 많은 편이어서 바둑 강국으로 분류되는 홍콩도 슬로바키아에 일격을 맞기도 하는 등 대륙간 격차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미국 바둑협회장 첫 방문
이번 대회에는 지난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 후진타오 주석에게 바둑판을 선물하면서 새롭게 관심을 받은 미국바둑협회의 앨런 아브람슨 회장도 방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국무부에서 펑윈 9단에게 바둑판 제작을 부탁했고 앨런 회장이 수소문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장인을 찾아 1주일에 걸쳐 만들었다.
하지만 앨런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바둑 자체에 별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다.”며 아쉬운 표정을 내비쳤다.
앨런 회장은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갖고 국무총리배 같은 대회에 지원한다는 점이 무척 든든할 것 같다며 미국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부러운 심정을 나타냈다.
미국 바둑 인구는 수천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실제적인 활동인구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 바둑협회는 U.S. 바둑콩그레스를 주최하고 새로운 바둑클럽을 만들어 나가는 등 다양한 바둑 보급활동을 펼치고 있다.
브루나이 협회 임원은 대학생
아시아바둑연맹(Asian Go Federation) 회의에 브루나이 임원으로 참석한 이는 22살의 여대생 햄시앙 씨다. 10급의 기력이지만 브루나이 바둑소사이어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바둑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 브루나이는 겨우 20명의 회원이 이 나라 전체 바둑인구나 다름 없지만 하나같이 바둑을 좋아하고 열정적이다. 대부분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다. 학교에서 주로 바둑이 전파되기 때문이다. 4개 학교가 겨루는 바둑 대항전도 있다.
햄시앙 씨는 본래 말레이지아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직장 관계로 브루나이로 가족이 이주했다. 18살 때 처음 바둑을 배웠다. 역시 학교에서 배웠다. “361로에서 생겨나는 끝없는 변화가 너무 좋아요. 전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데, 바둑을 두면 원 없이 생각할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햄시앙 씨는 대학교에서 전공인 회계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말레이시아로 당분간 떠난다. 나중에 브루나이로 돌아오면 브루나이 바둑 소사이어티 ‘친분신’ 회장과 함께 바둑을 알리는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친분신 회장은 이번 대회에 선수로 출전했다.
브루나이는 현재 협회 설립을 준비 중이다. 내년 초 즈음이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가 젊은 바둑을 개척해 나가는 브루나이의 성장한 모습이 기대된다.
폴란드와 라트비아 청년들
라트비아의 기리작스 선수는 19살이다. 같은 십대 중에 이 나라에서 바둑을 두는 이는 자신 혼자뿐일 거라고 말한다. 라트비아는 온 나라 바둑인을 합쳐도 30명이 될까 말까 하다. 대회도 열리지 않는다. 기리작스 선수에게 한국의 뜨거운 바둑열기는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만화의 영향으로 바둑을 배우게 됐다. “원래 전 '스포츠 가이'에요. 앉아서 하는 바둑 같은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러던 그가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만화 한 편의 영향이었다.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일본 바둑 만화인 고스트바둑왕(원제 히카루노 고)을 보고 감명을 받아 바둑을 배우는 자신을 주인공과 동일시 하게 됐다. 이 만화가 아니었다면 바둑을 계속 배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바둑은 인터넷 검색을 해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게임 규칙을 익히고 문제를 풀면서 실력을 쌓았다. 현재는 6급.
왼쪽이 폴란드의 카민스키 마렉 선수, 오른쪽이 라트비아의 기리작스 선수다.
폴란드의 카민스키 마렉 선수(3단)는 라트비아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바둑 만화영화가 TV로 방영된 적조차 없어요.” 바둑 서적도 거의 없고, 강자들도 없어 폴란드 바둑계는 성장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바둑 활동인구는 라트비아보다 훨씬 나은 수준이다. 활동인구는 300명 가량이다. 바둑이 어떤 게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비교적 많아서 5000명 정도다. 폴란드 바둑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카민스키 선수는 자국에서 바둑 전시회를 열어 보급에 나설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거의 준비가 끝났다고 한다.
바둑 만화는 일종의 문화적 산물이다. ‘한국에서 괜찮은 바둑 만화(고스트바둑왕 정도의 파급력을 기대할 만한)을 만든다면 어떨까’를 물어봤더니 “환상적일 것”이라며 두 사람은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보였다.
불가리아 14살의 대표 소녀 막달레나
불가리아의 바둑인구는 모두 200명 가량. 이 중 여성 바둑인구는 4명뿐이다. 1년에 바둑대회는 한 번 있는데 여기서 우승한 선수는 여성이었다. 그것도 14살의 앳된 고등학생이다. 막달레나 말라데노바 선수다.
국내 1위를 하면서 높은 레이팅을 받고 결국 국무총리배 대표로 한국에 왔다. 한국, 아니 아시아에 처음 와본 막달레나 선수는 높은 빌딩이 많고 전통적인 음악이 아름다운 한국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3년 전에 학교 친구한테서 바둑을 배웠는데 이제는 초단의 실력을 갖췄다. 원래는 체스를 배웠다고 한다. 체스에 실력이 붙으면서 바둑에 눈을 돌렸다.
정형화된 변화를 더 많이 알수록 고수에 가까워지는 체스와 달리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변화가 있는 바둑은 그녀를 완전히 빠져들게 했다. 막달레나 선수는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바둑을 가르치고서 같이 바둑을 둔다. 배우는 친구들마다 대부분 바둑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녀는 1회 세계마인드스포츠대회에도 참가했었다. 당시 제한시간이 1시간이었고 이번 국무총리배는 30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진지하게 수읽기를 할 수 있는 1시간짜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떠오르는 바둑 강자 우크라이나 ‘카차노브스키 아르템’
우크라이나의 카차노브스키 아르템(7단) 선수는 올해 핀란드에서 열린 유럽바둑콩그레스에서 2위를 했다. 유럽의 바둑 강국은 루마니아, 러시아, 독일, 헝가리, 네달란드, 체코 등이다. 이들 나라들이 순위를 다투며 경쟁한다.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은 유럽 바둑계에서는 변방에 속한다. 그래서 2위라는 기록은 예사롭지가 않다. 바둑 변방 국가 청년의 활약은 그래서 좀더 신비롭게 다가온다.
오른쪽의 선수가 떠오르는 새 강자 카차노브스키 아르템이다.
10년 전, 아르템의 아버지는 신문에서 바둑 입문강좌를 접한다. 재밌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아들 아르템에 바둑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이 바둑과의 첫 만남이었다. 우크라이나에는 어린이클럽이라는 사설 교육시설이 있다. 우리 나라로 치면 바둑교실 같은 곳인데, 주로 체스를 가르치지만 바둑도 덤으로 배우지 않겠냐고 권유한다.
체스가 더 알려진 나라라서 그렇다. 보통 바둑에 입문하게 되는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체스를 배우러 왔다가 바둑도 배우게 되는데 아르템은 특별하게도 바둑을 배우러 그곳을 찾아갔다. 50대 셰브척 선생님(5단)의 열정적인 교습으로 그는 꾸준히 기량을 키워 갔다.
처음엔 무척이나 졌다. 이미 2급~초단 정도의 상당한 실력의 된 학생들이 그곳에 꽤 있었다. 그저 바둑이 재미있었던 어린 아르템은 각종 바둑 서적을 읽었다. 사활과 맥 문제를 풀었고 실전을 거듭했다. 아마도 재능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이제 유럽 7단의 수준에 이르렀다. 바둑으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국가란 사실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놀라운 것은 아르템 정도의 실력을 갖춘 젋은이들이 십수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바둑 강국의 대열에 올라설 날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아르템 선수는 이번 국무총리배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의 이상헌 선수와 대국했다. 이상헌 선수는 중반 들어 대책이 없다고 느꼈다. 또 일본이나 대만과 둔 판도 어려웠지만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