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17) 군은 지난 8월, 사흘간 한국기원에서 벌인 제8회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에 나갈 한국대표선수를 뽑는 선발전을 거쳐 당당히 국가대표가 됐다. 선발전은 무려 128강 토너먼트전이었다. 대표선수가 되었을 때 박군은 “우승은 역시 중국과 다투게 될 것이다. 지금 프로 바둑이 중국에 많이 밀리는데 한국 아마추어가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중국에 두려움을 안기겠다.”고 당찬 각오를 말했다.
그러고 두달 뒤, 말 그대로 중국선수와 결승에서 만났고,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10월13일 구미시에서 열린 제8회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 최종 6라운드에서 박재근 아마6단은 중국의 아마8단 리 푸 선수를 192수 만에 백 불계로 꺾고 한국의 대회2연패를 달성했다. (기보는 아래 관련기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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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은 현재 한국기원연구생 1그룹에서도 랭킹1위를 달리고 있는 ‘입단 0순위’의 강자이기에 다들 이변이 없는 한 무난한 우승을 점쳤다. 그렇지만 당사자의 속은 그게 아니었다. 입단이 유망한 연구생 강자였기에 ‘우승을 못하면 더욱 체면이 안 서는’ 그런 게임이었다. 본인 체면도 체면이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부담이 컸다. 우승을 결정지은 직후의 소감에서 그런 심적 부담이 오롯이 배어났다.
“국가대표로 뛸 수 있어 기쁘긴 했으나 반대로 부담감 또한 적지 않았다. 다행이 대표로 우승해서 정말 기쁘다. 다음으론 덤으로 입단포인트를 따게 돼 기분 좋다.”
국무총리배에서 우승하면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IGF 주최)와 더불어 40점의 입단포인트를 준다. 누적 포인트가 100점이 되면 프로기사 자격을 얻는다.
▲ 한국을 상징하고자 트로피는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 모형으로 제작했다.
- 우승하기까지 고비가 있었다면?
“결승은 생각 외로 쉬웠다. 초반 실리를 확보한 뒤 두텁게 반면 운영을 하며 비교적 손쉽게 이겼다. 오히려 앞서 만난 캐나다와 체코 선수와의 대국이 더 만만치 않았다. 그쪽 바둑이 의외로 셌다.”
- 결국 중국과 우승을 다투리라고 예상했을 텐데, 리 푸 8단에 대해 달리 연구했는가?
“8년 전쯤인가, 이강욱 사범님과 일본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다툰 적이 있는 선수인데 그때의 기보를 검토해 봤다.”
상대는 10여년 전쯤 날리던 선수이고 우리나이로 치면 마흔 살에 접어든 노장이라 더욱 부담이 컸을 것이다. 실력 차는 분명 있고-해서 다들 우승은 따논당상이라 치켜세울 때, 이런 경우 승패는 심리싸움, 다시 말해 박재근 군의 마인드컨트롤에서 나기 십상이기에 나름 힘들었을 터이다. “우승해야겠다!”가 아니라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슬며시 웃으며 털어놓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
여섯 살 때 형을 따라 바둑을 배우게 됐다는 박군은 내년 1월 입단대회가 다음 목표다.
▲ 리 푸 선수와 벌인 결승전. 최종 6라운드에서 우승이 결정되었다.
▲ 서대원 아시아아마바둑연맹 회장으로부터 우승트로피를 받고 있는 박재근 아마6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