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위칭 아저씨가 저보다 15살이나 많으셔서 좀 부담이 많으셨나봐요”
한승주(17)가 국무총리배에서 중국의 아마 강호 후위칭을 꺾고 난 후 한 이야기다. 27일과 28일 양일간 광주광역시 염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회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 대회에서 한승주는 6전 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마지막 중국전을 끝내고 이광구 바둑평론가가 한승주에게 “축하하네”라고 말을 건네자, 그때까지 무표정이었던 한승주의 얼굴이 평소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한승주는 “아, 안 웃으려고 노력했는데…”라며 수줍어했다. 진 상대를 위해 승리를 하더라도 웃지 말자고 자신을 다그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개구장이 같아만 보였던 한승주가 이 순간 무척 어른스러워 보였다. 늘 자신감이 가득해 보이고 반상에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자신의 의견을 척척 이야기하는 한승주이기에 살짝 놀랐다.
한승주에게서는 재능이 철철 넘쳐 흐르는 게 보인다. 그의 순박한 웃음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소감을 들어 봤다.
▲ 가장 주목 받았던 중국과의 마지막 라운드 대국.
- 우승을 축하한다. 지금 기분은?
“좋은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회가 시작될 때만 해도 우승은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라운드마다 쉽게 이긴 판이 없었다. 이것은 예의상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정말 절절하게 느꼈던 것이다.”
- 마지막 중국과의 대결을 되돌아보면?
“후위칭 아저씨가 우변에 많이 집착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 번이나 손 빼어 좌변에 투자했고 그 때 이길 것을 확신했다. 마지막 승부처였던 하변에선 후위칭 아저씨가 최대한 내 집을 깨면서 타개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장면이 나왔었다. 잠깐 떨렸지만 금세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집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후위칭 선수는 한참 후에 돌을 거두었는데?) 아마도 마음을 정리하고 계셨던 것 같다. 제 기량을 다 보여주시지 못한 것 같다. 내가 15살이나 어리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 전통의 강자 후위칭 선수나 올해 한화생명배에서 우승한 대만 예비 프로 천치루이 선수는 경계 대상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천치루이 군의 기보는 봤는데 명성에 비해 그렇게 세다고 느끼지 못했다(천치루이는 도중에 홍콩 선수 찬나이산에게 1패를 하면서 결국 11위를 기록함). 문제는 후위칭 아저씨였는데, 도장의 형들은 후위칭 아저씨가 강하긴 하지만 나이 어린 쪽보단 차라리 상대하기 나을 거라고 귀띔해 주셨다.
그전에 후위칭 아저씨의 기보는 본 기억은 없었고 얼굴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승부는 5대5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 이광구 바둑평론가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으며 한승주가 활짝 웃고 있다.
-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국가는 어디였나?
“3라운드 때 맞붙은 태국이다. 태국 선수가 초반에 정석을 비틀었는데 내가 당했다. 중반에도 대세점을 하나쯤을 놓칠 줄 알았지만 정말 완벽했다. 끝내기에 들어갈 때엔 10집쯤 내가 뒤지고 있었다. 정말 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도 상대가 두석집 끝내기 등에서 여러 번 실수를 해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진땀 흘린 대국이었다.
사실 나머지 대국도 까다로웠다. 첫 판은 몽고 선수와 대결했다. 초반을 잘 짜기에 잠깐 긴장했는데 몽고 선수가 자신이 중반에 나빠지니까 빨리 바둑을 체념하는 것 같았다. 2라운드에선 덴마크 선수와 맞붙었다. 포석과 중반이 다 탄탄한 상대였지만 간간이 실수가 나왔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4라운드는 러시아 할아버지와의 대국이었는데 흉내바둑을 들고 나오셨다. 어떻게 대응할까 고심을 하다가 진행이 많이 안 된 상황에서 천원을 내가 먼저 차지해서 흉내를 깼다. (뜬금 없이 흉내를 깨면 천원이 놀게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렇긴 한데 어려운 변화로 나가다가 내가 실수라도 하면 거꾸로 위험해질 것 같았다.
천원에 두면 중앙으로 뻗어 나오는 방면의 모든 축이 유리하니까 한수의 가치를 톡톡히 해내니까 아주 손해가 될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러시아 선수가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둘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5라운드 일본 선수와의 대국은 아주 잘 풀렸다. 일본 선수의 요석이 잡혀서 거의 힘을 쓰지 못했고 집 차이가 계속 크게 벌어졌다.”
- 이 기쁨을 가장 먼저 돌리고 싶은 사람은?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시는 부모님이다. 이번에도 광주에 내려 오셨다. 스타디움 밖에 계신데 전화 통화로 우승했다고 알려 드렸더니 고생했다고 말씀하셨다.”
- 우승을 해 입단포인트 40점을 획득했다(100점이면 입단). 기분이 어떤가.
“당장은 입단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0점이었다가 40점이 된 것이니 기분은 좋다. 작은 점수가 아니다.”
- 지난 7월에 영재입단대회를 전승으로 통과해 프로기사가 된 신진서 초단과 한때 라이벌이었다는데?
“뭐, 그렇게까지 여겨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창 연구생 때 승률은 서로 어땠나?) 신진서 군과는 대략 10판 안쪽으로 두었는데 내가 한 번 진 적 있다. 사실 기억이 확실하진 않다. 다른 분들이 보기에 내 나이가 어려 보일 수 있지만 나도 나보다 어린 상대와 대국할 때 확실히 더 의식을 하게 된다. 누구라도 자신보다 더 어린 상대와 대국할 때는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 입단 준비는 잘 되어가나?
“도장엔 주 2회 나가 공부한다. 집에 있을 때도 사활도 열심히 풀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게을러진 걸 많이 느낀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