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르로 히잡을 한 아리따운 여인은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뭇 시선을 받았다. 여러 나라의, 그러니까 70개국 정도의 많은 국가의 바둑인들이 바둑 대회에서 서로 마주쳐 서로를 알기 시작한 지는 수십년 됐다. 그러나 중동의 전통 차림을 한 여성이 나타난 것은 아주 생소한 일인 것이다.
여인의 이름은 쉬린 모하마디(Shirin Mohamadiㆍ25)로 이란 출신이다. 이란은 국제바둑연맹(International Go Federation)의 회원국이 아니며, 이란에서 바둑 선수가 국제대회에 출전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선수들의 신기한 듯한 눈길이 그녀에게 쏠리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했다. 이란은 바둑의 세계에서 낯선 나라였고, 그러므로 국제 바둑대회의 역사에 처음 이란 선수가 출전했다는 기록은 의미가 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쉬린은 바둑에 대해 어마어마한 열정을 가진 이였다. 이란의 바둑 인구는 어림잡아 100명. 바둑의 불모지다. 쉬린은 실상 이란에서 본격적으로 바둑에 눈을 뜬 최초의 인물이다. 쉬린도 초급의 기력이지만 이란에선 최강자다. 직업은 스포츠 센터 직원이면서 이란 바둑협회의 부회장이다. 이란 바둑협회는 전국 25개 지부를 두었다. 바둑 인구는 적어도 형식은 곧잘 갖춘 셈이다.
쉬린이 처음으로 바둑 보급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경과는 이렇다. 이란에서 스포츠는 많은 정책 중 우선시 되는 분야다. 정부가 직접 스포츠 센터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려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다.
▲ 조혜연 9단과 포즈를 취한 쉬린.
‘위대한 페르시아인의 후예’임을 자부하는 이란인의 우수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를 스포츠로 보는 듯하다. 스포츠 센터는 이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를 발굴하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격투기나 마인드스포츠도 그런 분야별로 담당자가 있는데 센터장이 쉬린에게 바둑이라는 스포츠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쉬린은 바둑 부문 담당이 됐다.
센터장은 지인으로부터 바둑이란 게임이 있다는 걸 들었고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해 쉬린에게 책임을 맡긴 것이었다. 쉬린은 온라인으로 바둑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전 세계 바둑 유관 기관 및 단체에 200여 통의 편지를 썼다. 바둑 보급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중 가장 빠르게 답변이 온 것은 한국의 대한바둑협회로부터였다. 대한바둑협회는 바둑판과 바둑알, 영어로 된 바둑책을 풍성하게 포장해 이란으로 보냈다.‘아무것도 없는’이란에 이 용품들은 큰 도움이 됐다. 스포츠 센터에 새로 개설된 강좌엔 최초로 6명의 수강생이 등록했는데 모두 여성이었다.
늘어나고 있는 바둑 인구 또한 여성이 더 많다고 한다. 쉬린 자신조차도 ‘신기하다’고 말한다. 이로써 보건대, 앞으로 바둑 인구가 늘어난 미래에도 이란은 여성 인구의 비율이 어떤 국가보다 클지도 모르겠다.
쉬린은 바둑협회 부회장이지만 직접 바둑을 가르치기도 한다. 사실상 바둑을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전직 스포츠 잡지 디자이너였던 까닭에 디자인 일도 한다. 실력은 초급에 불과해 제대로 된 교습 과정을 밟아 보는 게 그녀의 바람이다. 쉬린은 대회에 나와 나무로 된 바둑판에서 제대로 대국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힌다.
쉬린은 체스도 배운 적 있지만 바둑은 체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록 마력이 있다고 말한다. 체스는 행마의 제약이 있지만 바둑은 자유롭게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이란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둑책과 강의용 자석바둑판이라고 한다. 사이버오로는 이란에 영어 바둑책을, 대한바둑협회는 자석바둑판을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일반 바둑판도 점점 모자라게 될 것 같다. 현재 이란의 바둑 강좌 수강생들은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실전을 하고 나머지는 관전을 하면서 교대한다.
이란 바둑의 새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 이란 최초의 바둑 선수 쉬린.
▲ 쉬린은 국무총리배에서 2승을 거두고 있다.